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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개인전 전시서문

들여다보고 덜어서 들어다 드러내다

김소현  

   어느 틈에 벌써, 그저 안일한 세월 속의 나는 더없이 성실한 시간을 따라 2023년 가을에 다다랐다. 가을빛 단란한 날, 하루의 빛깔은 파란빛에서 사잇빛, 노란빛, 그리고 노을빛으로 이어지다 다시 되돌아 하루하루 되풀이된다. 

분명 시간은 달래달래 한쪽으로만 흐르는데 마음의 시간은 들쑥날쑥 여러 방향을 오가거나 멈춰버린다. 나를 스쳐간 시간이 불현듯 거듭 돋아나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 슬그머니 내 마음에 이르러 이른 새벽빛의 흐름을 바라보게 만들더라. 

나의 그림은 찬찬히 긴 호흡으로 들여다보고 살며시 덜어서 사뿐히 들어다 서서히 드러내는 과정이다. 돋아난 시간들로 되돌아가 들여다보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우연들이 더해져 하나하나 덜어내어 더디 들어다 그림 위에 담고 또 드러내어 다다른 곳이 당장의 시간이다. 

그림에 담은 마음을 언어화하기에 나는 입을 열어 소리로 들리는 것이 편치 않다. 함부로 내뱉은 소리는 빠르게 지나 내리 꽂히듯 그림 위에 다시 되돌아와 괴상한 형태로 나타날 것만 같다. 

나의 그림이 사뭇 고즈넉하게 연상되는 배경이길, 마음으로만 내지르는 나의 소리는 막연한 형색 덕에 괴이하게 여겨지지 않고, 우리들의 마음을 다독여 하루의 빛깔, 새벽빛의 형상이 그 속에 돋아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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